시민의「만(滿)」

부천시민의 시선으로 10,000시간의 문화예술경험을 이야기하는 '시민의「만(滿)」'입니다.

부천 관찰하기

글 | 안경자(부천시민, 인스타그램 drawings for my grandchildren 계정 운영자) · 2019-07-30

부천 관찰하기

저는 1942년생, 게다가 외국 브라질에서 36년이나 살다가 2017년 10월 말에 돌아와 아직도 두리번거려야 하는 부천 신참내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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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서울을 떠날 때는 61년도에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산업화 에너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려던 때, 어쩔 수 없이 서울 인구가 분산되던 때, 저녁이면 새 도시 성남으로 가려는 승객이 을지로 4가 버스 정류장에서 길게 줄을 서던 때, 양귀자가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연작소설을 통해 당시 소시민의 풍속도를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 보이던 때, 박완서가 『옥상의 민들레꽃』을 통해 미래의 시민 생활을 예고해주던 때였고, 부천 소사는 아직도 복숭아밭이던 때였지요.

겨울이 없고 전쟁은 모르며 땅은 넓은 브라질은, 평북이 고향인 저희 부모님껜 이상향이었을 겁니다. 7남매를 데려가 맘 놓고 살게 하고 싶으셨던 부모님은 지금 상파울루 공동묘지에 계십니다만 사철 푸른 땅에서 계절의 민감함을 모르고 살다 이곳에 돌아온 저희 내외에게는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오가는 게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가움과 함께 옛날을 되돌아보는 즐거움이었는데 미세먼지만은 경악! 그대로였지요.


선진 대한민국을 몸으로 느끼며 그 느낌들을 그림으로 글로 우리 인스타그램 계정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손주들을 위한 그림)'에 올렸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을 알리는 까치 소리, 이삿짐을 나르는 사다리, 공원 정경, 물길어오기 같은…

이 ‘손주들을 위한 그림’은 2015년 4월에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간 딸네 가족, 특히 두 외손자를 그리워해 그림과 글로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을 전하려는 지극히 소소한 소재의 일상을 담은 것이지요. 영국 BBC방송이 첫 소개를 해준 이후 각 나라 언론들이 앞다투어 인터뷰로, 기사로 알려 주어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좋아해 주는 유명 계정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간지, 티브이, 잡지, 각종 인터넷 매체들이 저희를 취재했지요. 언론사 관심의 초점은 어떻게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SNS를 익힐 수 있었나?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 어려움은? 반응은? 백세시대를 살려면? 즐거운 여생을 보내려면? 이런 것이었지요.

그림을 그리는 저의 남편은 저와 말띠 동갑이고 1961년 같은 해에 같은 대학에 들어가 교내 커플로 인연을 맺고 67년도에 결혼하여 남매를 두었습니다.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수채화로 그린 그림들이 ‘따뜻하다, 눈물이 난다’라며 댓글로 응원을 받지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공유해줘서 고맙다, 나도 우리 부모님을 위해 뭔가 활동할 수 있는 일을 권해야겠다‘란 댓글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 계정이 세계 곳곳의 관심을 받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림에 스토리가 함께한다는 것이지요.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제가 씁니다. 그림과 함께 글을 가족 메신저에 올리면 뉴욕의 아들과 한국의 딸이 보는데 토론이 벌어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모두 다 좋다 하게 되면 아들은 영어로,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을 합니다. 그럼 인스타그램 계정엔 세 언어로 올라가지요. 이렇게 세 언어를 쓰는 인스타그램은 일찍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인스타그램 계정이 38만 팔로워라는 관심을 얻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답니다. 손자들을 떠나보내고 무료한 나날을 보낼 아버지를 걱정한 아들이 그림을 권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적에 받아본 아버지의 엽서 그림 두 장! 그걸 기억하고 있던 아들은 사실 아버지가 가진 그림 재능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버지, 그림을 그리세요. 그리고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리세요.” 그리고 실제로 아버지에게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는 전혀 흥미가 없었지요. 왜 인스타그램이라는 데 올려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들의 진정한 태도에 감복해 마침내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심한 아버지는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나가는 모든 어린이와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시선을 주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엔 때때로 할아버지의 회상도 올라갑니다. 어렸을 때 이야기 – 전쟁이 나서 집이 탄 이야기, 피란을 가던 한겨울, 중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진 이야기 – 는 동서를 떠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지요.


이렇게 다양하지만 일상적인 소소한 일들은 이담에 어른이 된 손자들이 어느 날 문득 들춰 보게 되었을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런 삶을 사셨구나,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겠지요. 그것이 곧 역사라 생각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보다 더 안타깝고 더 아름답고 더 사실적인 지난 우리의 근대사.  많은 이들이 제가 쓰는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글자 수의 제한 때문에 맘 놓고 쓰지 못하지만 되도록 운율도 있고 또 감성적인 낱말로 쓰려 노력하고 있는데, 그 덕이 아닐지요.

노년을 잘 보내려면 반드시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나의 특기나 재능이 저 깊숙한 내면세계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을 공무원으로, 교사로, 장사로, 회사원으로, 연구원으로 보내며 축적된 전문분야의 특별한 뭔가가 노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바람에 그 가치를 잃고 어둠 속에 사장(死藏)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만 ’꼰대‘가 되어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돌아보고 조금 바꾸면 어떨까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은 변화입니다. 부천의 어른들만이라도 진화하는 부천과 일상을 잘 관찰하시기를 권합니다.

* 글 | 안경자(부천시민, 인스타그램 drawings for my grandchildren 계정 운영자)

’손주들을 위한 그림‘은 instagram/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팔로우를 통해 마음 따뜻해지는 사랑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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