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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부천의 활동가 및 예술기관 관계자로부터 부천의 문화예술정책 이슈 및 방향성을 듣는 'FOUCS'입니다.

부천도시유산 탐방기3 : 펄벅 기념관

글, 사진 │ 최예선 (작가, 도시 산책자, 문화 칼럼니스트)

삶에서 건져 올린 공감의 언어

“문학이란 게 본래 그런 게 아니겠어요? 본질적으로 억압받는다든가 서러운 계층, 그늘에 가려진 층에 대한 애정을 쏟게 되는 게 당연한 게 아니겠어요?”

소설가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설은 타인에 대한 탐구서입니다. 인간을 얼마만큼 깊이 탐구했는가, 사람의 마음과 삶의 여정에 어떻게 접근하고 얼마만큼 귀를 기울였는가. 소설의 성패는 거기에 달려있습니다. 사람의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일수록 시대를 밝히고자 고민하게 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바로 그 현실을 말해줄 틈새의 인물을 창조하게 되지요. 펄 벅의 『대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작가의 얼굴에서 푸른 눈과 금발을 발견하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겁니다. 중국 대륙의 황량한 농촌의 풍경과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3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있기에 당연히 중국내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소설가는 국적이나 국경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습니다. 또한 소설가가 천착하는 질문은 자신이 살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나옵니다. 그곳의 삶의 문제를 그곳을 넘어서는 스토리로 풀어내는 것이 소설가의 숙명이지요. 현실이자 생활에서 문제의식을 도출하되 그 해답은 현실을 초월해야 하는 것이죠.


펄 벅의 문학은 삶과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시던스트라이커 부부의 딸로 태어나 선교 부임지인 중국에서 스무 살까지 생활했던 소녀는 스스로 중국인이라 여겼을 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새 이름 ‘진주’를 무척 사랑했었죠. 작가로서 살아가면서도 제2의 고향 중국의 현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대륙을 넘나들며 살아온 부모와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은 펄 벅은 『대지』를 쓴 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얻었지요.

그렇게 문학가의 삶 속에 안주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펄 벅은 활동가로서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문학의 힘을 세상을 향해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그리고 아시아의 격변을 몸소 체험하며 펄벅은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전쟁 후 아시아 곳곳에 남겨진 미군 혼혈아동이었죠. 뉴 피플. 펄벅은 혼혈아동을 두 세계를 통합해줄 ‘새로운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시킬 재단을 만들고 1967년 아시아 최초로 부천에 소사희망원(Sosa Opportunity Center)을 개관했습니다. 평소 친분이 깊었던 유한양행 유일한 사장이 심곡동에 있는 공장의 일부를 기증하여 이 장소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이 천 명이 넘습니다.

위대한 문학가인 펄 벅과 위대한 활동가인 펄 벅의 삶은 결코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학가로서 견지한 신념이 휴머니스트 활동가로서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것입니다. 펄 벅에게는 아픈 딸이 있었고, 자신 역시 중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경험이 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도 온전히 그 문화에 속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정신적 혼혈아라고 여겼던 펄 벅의 마음이 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혼혈이라는 이유로 멸시의 대상이 된 아이들에게 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문학이 질문할 때 펄 벅은 삶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동서가 화합하는 길은 이 아이들을 돌보는 곳에 있다고 펄 벅은 믿었습니다.


소사희망원은 1975년까지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이 세밀해지면서 해외원조에 기대 구호활동을 하던 소사희망원은 역사의 뒤로 사라졌습니다. 몇 장의 사진만 존재할 뿐, 그 장소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2006년 그 자리에 당시 재단 사택의 모습을 재현한 펄벅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정원과 산책로가 골짜기를 향해 펼쳐진 펄벅 공원 앞에 작은 이층집처럼 아담하고 평화로운 기념관이 있습니다. 지금은 돌보아야할 아이들은 없지만 행동하는 문학가의 흔적을 발견하고픈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산책하다 들른 동네사람들도 있고, 소사희망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찾아옵니다. 장소는 사람을 기억하게 합니다. 장소는 삶의 의미를 묻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라진 장소를 더듬고 복원하는 것은 기억을 되찾는 일과 같습니다. 펄벅기념관은 사람들의 기억을 듣고 기록하며 역사자료를 수집하는 ‘소사희망원 1030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펄벅재단의 기증품으로 펄 벅을 소개하는 장소였다면, 앞으로의 펄벅기념관은 마을의 기억을 담아내고 부천의 역사를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유산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겠지요.

이 장소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인물 ‘펄 벅’의 삶이 지금 우리 사회에 중요한 언어들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벨문학상의 영예도, 인권운동가이자 자선사업가의 면모도 훌륭하지만, 그의 삶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희망과 공감의 언어가 존재합니다.

도자수업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청소년과 소통하고 직업 교육까지 이어가는 비영리 단체 ‘통합예술나눔터(통예나)’의 운영자는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장애라는 말이 불필요해지도록 이 아이들이 더 많은 사람과 섞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통예나의 예술 활동은 다름이 인정되는 사회, 함께하는 사회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펄 벅의 정신을 읽습니다. 소설가 양귀자도 『원미동 사람들』에서 한 동리 안에 사는 사람들의 다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꿈이 있고 나름의 치열함으로 세상을 밀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원미동 사람들’이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억압받고 서러운 계층에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는 박완서의 말에도 펄 벅을 느낄 수 있죠.

펄 벅의 정신은 부천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과 건축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소외되고 노후된 장소에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부여할 때, 행복한 공동체를 꿈꿀 때, 그곳에 감도는 공감과 공존의 언어들에서 펄 벅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펄벅기념관이 펄 벅이라는 한 인물을 넘어 자기 분야에서 철학을 만들어가는 많은 예술가들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공감과 공존의 언어가 간절히 필요하니까요.

* 글 │ 최예선 (작가, 도시 산책자,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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