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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예술이 필요합니다.

안태호 | (前)부천문화재단 문화진흥팀장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과 아름답고 단단한 문장으로 유명했던 평론가 김현은 문학의 쓸모에 대해 쓸모없음의 쓸모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문학이 실용적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가 가진 관습과 실용적가치를 반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학이 저녁을 거르는 사람의 밥을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저녁을 거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 수는 있다는 이야기지요.


새삼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논하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예술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어째

낯선 일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서 꺼내보는 말입니다.

지금은 누가 뭐래도 문화의 시대입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던, 이제는

관공서의 구호처럼 들리던 저 말이 실제로

현실이 된 시간과 공간에 우리는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허전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분명, 예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혜택을 누리게 됐고 기술과 매체의 발달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만큼 수많은 문화콘텐츠를 쏟아내는 구조를 창출해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예술의 자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문화정책의 방향은 예술()에 대한 지원에서 수요층을 확대하고 예술의 사회적 쓸모를 강조하는 쪽으로 몸피를 키워왔습니다. 예술교육이 강조되었고, 예술이 갖는 힘이 두루 이야기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미술을 비롯한 커뮤니티 아트(공동체 예술)의 유행은 예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마저 생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는 한 예술가는 예술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거 아니냐며 투덜거리기도 하더군요. 딴은 일리가 있는 불평입니다. 나라님(?)도 해결 못하는 온갖 사회문제를 예술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혹은 해야 한 다는 미망에 사로잡힌 거 아니냐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서 그런 것처럼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앞서 인용한 김현의 말은 예술의 쓸모를 잘 비춰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술은 너무나 자주 현실문제에 대해 무기력한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한편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최근 한 전시를 봤습니다. 허망한 기분이었습니다. 새로움을 기치로 내건 그 전시에선 희망, 사랑, 행복 등의 키워드가 난무했습니다. 허전함의 연원이 무얼까 골똘히 생각해 보니, 전시에서 보여주는 세상이 내가 발 딛고 사는 이곳과 너무 동떨어진 것만 같습니다. 물론,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예술의 효과가 없지 않습니다만, 현실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예술은 자주 헛헛함만 남기기 십상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 형태를 멋대로 왜곡했다는 비판을 하자, 카프카가 했다는 말은 예술의 중요한 속성 하나를 드러내 줍니다. “이 사람은 아직 우리의 의식에 들어오지 않은 기형들을 묘사한 거야. 예술은 흔히시계처럼 앞서가는 거울이라네”. 시계처럼 앞서가는 거울! 예술이 현실을 드러내주는 것을 넘어 아직 도달하지 않은 현실들을 앞서 사고한다는 것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요.


, 그래서 다시 예술이 중요합니다. 재단은 지금까지 많은 사업들을 직접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직접 사업은 수많은 좌충우돌을 통해 기획자들의 역량을 기르고 재단의 사업외연을 확대하는 데 주효한 전략이었습니다. 재원의 한계라는 측면에서도 직접사업 비중이 높은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비중을 조금 나눠보려 합니다. 사업의 구조를 이동하는 데 따르는 진통이 없지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재원의 조달부터 지원방식에 이르기까지 연구하고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올해 처음 시작하는

시각예술분야 신진작가 지원사업을 출발 삼아

예술이 시민들에게 갖는 의미를 다시 묻고,

예술의 쓰임새와 가치를 고민하려 합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예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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