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문화권 보장과 문화도시, 그리고 문화헌법 개헌과제

글 | 황승흠(국민대 법대 교수) · 2020-12-31

왜 문화도시가 필요한가?

문화도시의 시대가 열렸다. 지역문화진흥법에서는 문화도시를 ‘문화예술ㆍ문화산업ㆍ관광ㆍ전통ㆍ역사ㆍ영상 등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법에 따라 지정된 도시’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이 법적 정의는 문화도시가 무엇이냐를 말해주기는 하나 왜 문화도시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문화도시가 무엇인가에 더하여 왜 문화도시를 해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에 대한 답변을 한마디로 하면 국민의 문화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국민이 가지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문화도시가 필요한 것이며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재원을 투입하는 것의 정당성도 이에서 비롯된다.


문화권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문화권이란 무엇인가? 문화권이란 문화를 누릴 권리이며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이기도 하다. 기본권이란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이렇다. 현행 우리 헌법에는 문화권이 규정되어 있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아쉽게도 문화권에 관한 명문의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련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전문에는 “문화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하여 문화 영역에 있어 차별금지를 선언하였다. 제9조에서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ㆍ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하며, 제22조에는 “모든 국민은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규정한다. 전통문화와 민족문화가 다소 낡은 용어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 조항이 헌법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보면, 요즘의 ‘문화’라는 어법과 같은 전제를 하고 있다. 특히 ‘예술가의 권리’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우리 헌법의 특유한 조항인데 문화에 대한 특별한 취급을 읽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48년에 제헌헌법을 만들 때 헌법의 초안을 작성한 분이 유진오 선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분은 법학자이기도 하지만 ‘김강사와 T교수’를 썼던 당대의 소설가로 이름을 떨친 문장가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은 예술가의 손으로 기초한 헌법이라는 점은 꼭 기억되어야 한다.

딱히 문화권이라고 명시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문화권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헌법은 제37조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ᅠ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문화권은 헌법에 열거되어 있지는 않지만 국민의 권리로서 얼마든지 존중받을 수 있다.


문화국가의 원리

문화권과는 다소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우리 헌법이 문화국가의 원리를 인정하고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5월 27일에 이루어진 학교보건법의 학교 정화구역 내에 극장의 시설 및 운영을 금지하고 있는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에서 "우리나라는 건국헌법 이래 문화국가의 원리를 헌법의 기본원리로 채택하고 있다."고 하였다. 문화국가의 원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오늘날에 와서는 국가가 어떤 문화현상에 대하여도 이를 선호하거나, 우대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는 불편부당의 원칙이 가장 바람직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하여 국가가 특정 문화로 끌고 가는 것이 문화국가의 의미가 아니라고 하였다. 헌법재판소는 "오늘날 문화국가에서의 문화정책은 그 초점이 문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생겨날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는데 두어야 한다."고 문화국가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문화기본법의 문화권

헌법적 차원에서는 문화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2013년 12월 30일에 제정된 문화기본법은 법률의 수준에서 문화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제4조에서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문화기본법은 제2조 기본이념에서 “문화가 민주국가의 발전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문화의 가치가 교육, 환경, 인권, 복지, 정치, 경제, 여가 등 우리 사회 영역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문화헌법의 개헌과제

우리 헌법에서 문화국가의 원리가 인정되고 문화기본법에서 문화권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문화권이 비록 헌법에 열거되지는 않았다 해도 결코 경시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에 문화권이 명시되어 있는가는 문화권의 보장을 강화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헌법에 문화권을 명시하자는 문화헌법 개헌과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서 개헌논의가 있었고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된 바가 있었다. 비록 헌법 개정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다음 정부에서도 언제라도 개헌 논의가 다시 촉발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다른 나라의 헌법에서 문화권을 규정한 사례를 보면, 포르투갈 헌법은 “모든 국민은 문화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폴란드 헌법은 “폴란드공화국은 민족적 또는 인종적 소수에 속하는 폴란드 국민에게 그들 자신의 언어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의무, 관습과 전통을 유지할 자유, 그리고 그들의 자신의 문화를 발전시킬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며, 일본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게 문화적으로 최저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이 문화권을 규정한 헌법, 다시 말해서 문화헌법을 가질 때가 되었고 그래야 할 자격도 넘친다.
그간에 논의되었던 문화헌법 개정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헌법 전문에 “문화의 가치를 사회에 확산하여”라는 문구를 추가하도록 하고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문화의 창조 진흥 및 문화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로 개정한다.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문화권 ‘강화’를 위하여 별도의 조항을 추가한다. 여기서 강화라는 용어를 쓴 점에 유념해 주기 바란다. 문화헌법 개정으로 문화권이 신설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정되는 문화권의 보장이 강화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독립 조항으로 만들어지는 문화권 조항은 “모든 사람은 문화생활을 누리고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모든 국민이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표현과 활동을 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문화유산 및 공동체문화의 보존 계승발전을 위해 법률에 정하는 바에 의하여 지원해야 한다.”로 구성된다. 문화권을 보장을 위해서 그리고 이를 실현할 문화도시의 미래를 위해서 문화종사자들은 문화헌법 개정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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