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아깝지만. 다행히도. 그럼에도위기 시대, 문화예술의 새로운 전환과 미래

글 | 최선영(창작그룹 비기자 대표) · 2020-12-02

그동안 해온 것들이 아깝지만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충분히 표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번에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오랜 시간 준비했고 많은 자원과 자본을 쏟아부었고 여러 사람이 마음을 담았지만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인한 갑작스러운 상황 안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고 허무해지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아깝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동안 해온 것들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아쉬움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것들을 준비해왔을까를 생각하면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국가적 차원까지 너무나 아쉽고 또한 아깝다. 그 시간의 시작점이 몇 년 전, 몇십 년 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감정은 우리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그런데 우리가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보다 솔직하게 무엇일까. 올봄에 하반기를 기대하며 놓지 못했던 것, 그리고 현재도 2021년과 그 이후를 상상하며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것은 한 명의 창작 과정, 작은 대화, 보이지 않는 교감, 멈추거나 쉬어보는 시간, 느린 움직임 같은 것일까. 아니면 몇 차시 프로그램, 수백 명이 참여하는 행사, 올해 끝내야 하는 사업, 여러 사람들이 게시물을 조회했다는 근거, 생산된 결과물 같은 것들일까. 전자와 후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한쪽의 가치만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단호하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기는 하다.

나 역시 코로나 상황에도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자 노력했고 들쭉날쭉한 행사 일정에 불안해했다. 하지만 문득 작업의 진행 여부나 결과물을 중심으로 올해의 활동 의미를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큰 프로젝트가 상반기부터 무산되었고 여름에 진행하려던 행사는 밀리고 밀려 급박하게 가을에 진행되었는데 그것의 진행 여부가 과정에서의 다양한 만남과 의미보다 중요하게 전제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하기라도 하면 다행이었으니까. 안 하고 넘어가기엔 아까운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런데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면 급히 진행한 사업 혹은 작업들 안에서 더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고 싶었던 대화나 소통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은 길고 깊은 대화일 때도 있었고 일시적인 교감일 때도 있었는데 오히려 다수가 모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전보다 더욱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 순간에 대해 다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면 그것은 이 다급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느리고 미련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미루거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더 급박한 일정들을 소화해야 했으니까. 그렇게라도 해내는 것이 올해는 현실적으로도 중요하고 감사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내년부터는 어떨까.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제안보다 나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아까움’을 이유로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을 좀 더 내려놓고자 한다. 이것은 환경적 요인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을 바꿔야겠다는 판단이라기보다 그동안 미뤄왔던 질문을 마주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내년에도 비대면 활동이 많아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그에 적절한 활동 방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규모의 대면 활동에서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순간들을 더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세계적인 환경 변화에 대한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빠른 대처 능력 마련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렇게 발 빠른 대응, 혁신적인 계획 수립, 대응체계 마련, 새로운 소통 방식의 개발 등 기획 및 생산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더욱 거리를 두고자 한다. 왜냐하면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도 예측하기 어려웠던 상황이 전 세계를 덮쳤고 문화예술계 역시 그동안의 이슈들과 맞물려 그 상황을 직면했다. 그런데 어떻게 몇 개월 만에 바로 내년, 혹은 몇 년 후의 삶의 태도나 방식을 고민할 수 있을까. 시간이 필요하다. 느리게 사유하고 싶다. 그동안 바쁜 사회의 흐름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속도라고 여기며 달려왔기 때문에 이 상황을 마주한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다시 빠르게 대응책을 제시하려 한다면 우리는 비슷한 어려움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그때 그 사람과 충분히 대화했을까, 프로젝트 운영을 위해 누군가의 창작행위를 이용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전제했던 시민의 개념이 너무 피상적이지는 않았을까, 작고 느린 시도들 안에서 인간은 어떤 속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큰 행사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면 그 과정에서 쓰레기는 얼마나 덜 발생할까 등등. 천천히 사유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이번에는 미루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적, 예술적 과정은 사회의 지배적인 흐름과 달리 효율적이고 확실한 답변을 마련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사유와 성찰은 지금 가능한 질문과 태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는 어느샌가 불확실함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회 안에 와있다. 무언가에 의해 떠밀려 온 것인지 우리 스스로 그런 사회를 열심히 만들어낸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온 방식, 문화와 예술을 해석하거나 기획하거나 확장해온 방식 안에 우리의 긴 역사와 노력이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을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다른 계획이 아닌 다른 방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이 아니라 뒤로 가보며 성찰하는 것, 혹은 각자 안으로 깊이 들어가 미뤄왔던 질문을 꺼내어 보는 것. 당연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그 시간을 확보해 보는 것. 정책이나 제도 역시 문화예술계의 어려움에 빠르게 답변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주는 것만으로 사회적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수에게 닥친 불안과 불확실함 안에서 지금 필요한 태도를 신호처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꺼내어 볼 질문과 경험이 많다. 외면하고 지나온 실수도 많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실천도 많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구호보다 희망적인 신호가 아닐까. 하지만 그 신호는 저 멀리 우뚝 선 등대가 아니라 이제는 사방에 흩어져있는 파편화된 무언가일 것이다.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잠시 멈춰 서서 과연 저 멀리 빛나던 것이 등대였는지, 다른 불빛은 없는지, 어디로 먼저 가볼 수 있을지 각자의 시간을 가져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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