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기후위기는 언제 ‘첫 번째’가 되나요

글 | 김한솔(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 2020-09-28

지난 5월 지리산 구상나무 고사 현장 취재 후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들렀습니다. 주문한 국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온종일 함께 현장을 다녀온 녹색연합의 서재철 전문위원에게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위원님,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잖아요.” “그렇죠.” “5년 전보다도 나쁘고, 10년 전보다도 나빠졌다고 하잖아요. 오늘 본 구상나무들도 이렇게 막 죽어가고요. 환경 정책은 여전히 가장 우선순위에 있지도 않고요.” “네.” “그런데 위원님은 환경운동을 26년이나 하셨잖아요. 환경은 이렇게 계속 나빠지는데,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게, 매일같이 현장 조사를 다니면서 일을 하실 수 있나요. 회의를 느끼실 법도 한데….” 서 위원은 연락을 할 때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산에 있거나, 산에 갈 예정이거나, 아니면 산에서 막 내려온 상태입니다. 그런 그가 말했습니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말이에요,” “네.” “솔직히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의 기후위기는 너무 심각해서, 그런 생각할 겨를이 없다니까요.” 지난 6월부터 7월 말까지, <기후변화의 증인들>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며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자신의 일터와 일상 생활에서 느끼고 있는 이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제주 바다에서 평생 물질을 한 해녀, 평생 배 농사를 짓고 양봉을 한 농부, 국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산불 상황 때마다 현장 지휘를 하는 산림항공본부 직원들, 38도가 넘는 폭염에도 ‘야외 노동’을 하러 나오는 가스검침원·배달라이더·택배기사·건설노동자, 바깥과 집 안과의 구분이 얇은 판자벽 하나인 주거취약 계층들. 이들은 대부분 ‘기후변화에 대해 잘 몰라 인터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하나는 모두 기후변화의 생생한 ‘증언’들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후변화는 여전히 추상적인 경고지만, 누군가에겐 이렇게 구체적인 현실의 위협입니다. 인터뷰이의 말을 기록할 때마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너무 심각해서, 회의감을 느끼고 말고 할 겨를도 없다’는 그의 말을, 그 말에 담긴 절박함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도 이만큼 절박한가?

환경 문제는 언제나 우리 사회의 첫 번째 의제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 같은, ‘새롭지 않은’ 문제. 그렇게 계속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이제 2020년이 됐습니다. 정부가 올해 발표한 가장 큰 기후변화 정책은 ‘그린뉴딜’ 입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미국의 ‘그린뉴딜’과 유럽의 ‘그린딜’에 비춰보면, 이 정책은 ‘탄소 중심의 산업구조를 전환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친환경 일자리를 창출하되,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고려해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하는 시스템 재구조화 정책’ 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발표된 정책에는 (비판이 나오자 나중에 발표하긴 했지만) 그린뉴딜의 핵심이어야 할 ‘구체적인 온실가스의 감축 목표’도, 정의로운 전환의 방식도 제대로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환경은, 기후위기는 첫 번째가 되지 못했습니다. 환경단체들에선 비판이 쏟아졌고, 환경부 장관은 얼마 뒤 열린 간담회에서 이번 그린뉴딜을 “시작점, 탄소중립 사회로 갈 수 있는 경로와 방법을 찾는 첫 단계의 사업”으로 표현했습니다. “(일단) 5년의 중기재정계획의 틀 속에서 실현해낼 수 있는 것을 담은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러니 ‘적절한 때’에 대해 자꾸 묻게 됩니다. 지금보다 더 구체적인, 그리고 과감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볼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요. 기록적 폭염, 기록적 장마가 연이어 닥치고,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어나는데도 ‘그린뉴딜’이라는 타이틀을 갖고도 여전히 ‘시작점’을 논하고 있다면, 기후위기는 언제 우리 사회의 첫 번째 의제가 될까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914만t(2017년)으로, 매년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부족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0년까지 5억3600만t)를 설정해놓고, 해외에는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해서 지으며, 실망스러운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회는 뒤늦게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며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임을 선언”했지만, 그래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기존 계획보다 얼마나 더 할 계획인지는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미 때를 기다리다 지친 청소년들은 헌법재판소를 찾고 있습니다. 전원 10대 청소년들로 구성된 원고들은 국회와 대통령을 상대로 ‘소극적 기후위기 정책으로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정부가 지금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할 경우 ‘기후재난’을 막을 수 없고, 생명권·환경권·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 기본권 침해의 피해는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빼곡하게 적은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에서 지금이,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기후위기를 우리 사회의 첫 번째 의제로 올리기에 적절한 때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후위기에 대응할 때를 놓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스스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기획하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펴 달라며 헌법재판소까지 찾은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해야 할 최소한의 행동이기도 합니다.

 

정세랑 작가의 SF단편 <리셋>에는 환경 파괴를 아랑곳하지 않고 지내다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 지렁이들에 의해 ‘리셋’된 세계가 그려집니다. 리셋되기 전의 세계는, 많이 만들어 많이 쓰고, 한껏 배출하는 지금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소설 속 인류는 리셋 후에야 비로소 기존과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두려움을 원료로 인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우리도 지금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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