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예술하는 손, 연결하는 손

글 | 장희숙(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 2020-09-01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낯선 경험들이 삶을 뒤덮었다. 우리는 일상의 모든 면면에서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어내는 중이다. 곧 끝나겠지, 막연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현실을 유예하는 사이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pandemic)은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 기대 속에는 불안을 조금만 더 견디다, 이 사태가 종식되면 이전의 일상으로 가뿐히 돌아가리라는 욕망이 혼재해 있다. 그러나 더욱 거세지는 현실은 우리를 그렇게 호락호락 놓아줄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니 막연한 기대는 이제 놓아버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코로나19는 우연한 전염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쥐에게 있던 인수 공통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자연의 파괴다. 무차별적으로 부수고 베어내고 밀어버리며 지구를 정복해온 인간의 삶이 만들어낸, 명백한 인재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후라도, 인류가 초래한 기후 위기는 언제든 새로운 전염병을 우리 곁으로 데려올 가능성을 안고 있다. 언제든 이런 재난이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눈앞에 닥친 오늘을 새로운 일상으로 성실히 꾸려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엄중한 과제다.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일상을 꾸려가는 핵심에는 ‘교육’이 있다. 문을 열지 못하는 학교가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방법은 온라인 학습이다. 많은 이들이 학교의 주된 기능은 ‘학습’이라 생각해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명료히 알게 되었다. 학습은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학교가 문을 닫고 보니 학습은 학원에서도 할 수 있고, 온라인으로 집에서도 대체할 수 있다. 그동안 왜 그 많은 아이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학교에 나가 일제히 교과서를 펼쳤단 말인가.

코로나 시국으로 또렷하게 확인된 학교의 역할은 오히려 ‘사회적 네트워크’로서의 기능이다.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학습의 공간’이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관계의 공간’이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소풍, 수학여행…. 학교생활에서 손꼽아 기다리는 즐거움의 시간은 대개 수업, 그 사이와 너머에 있지 않은가. 사회적 관계를 배우며 자기 삶을 풍요롭게 꾸려갈 수 있게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단절 속에서도 연결감을 회복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교육이다. 내면을 가꾸고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는 문화예술교육이 그 좋은 매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교육의 시작은 ‘손’을 다르게 쓰는 것에 있다. 직립을 하면서 자유를 얻게 된 두 손을 움직여 인류는 문명을 일으키고, 문화예술을 창조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왔다. 또한 ‘손’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서로를 연결해 주는 대표적인 신체 부위다. 반가운 이와 악수를 나눌 때, 고마움이나 미안함, 슬픔과 기쁨을 표현할 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는다. 우리는 손으로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과의 연결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의 ‘손’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가 되어버렸다. 경계대상 1호가 된 셈이다. 수시로 씻어야 하고, 타인과 손을 잡는 것은 상상도 못할뿐더러 다른 이의 손이 닿은 물건에 자기 손을 대는 일도 금기시되고 있다.

이런 단절의 시간을 위로할 수 있는 것 또한 ‘손’이다. 길어지는 코로나 사태로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은 다시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하고, 프라모델을 만든다. 유튜브를 보며 제빵에 도전하고, 베란다에 꽃을 심고 채소를 가꾸며 부지런히 두 손을 움직여 일상을 회복하고자 노력 중이다. 고독의 시간을 견디고 연결감을 확인하기 위한 우리의 눈물겨운 시간들이다. 서로 연결되기 위해 내밀었던 손을 이제 자신의 삶을 재창조하는 데 써야 할 때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앞에 많은 이들이 코로나 우울을 겪고 있다. 생계에 대한 불안함, 일상의 파괴, 단절로 인한 고립감,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찬 강퍅한 오늘이야말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삶의 일부로서의 예술’을 창조해낼 때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사람들은 내면을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그간 문화예술을 즐기는 우리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 생각해보면 만들어진 것을 누리기에 바쁜 세월이었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날아가 낯선 것을 보면서 주로 향유자 역할을 했던 우리는 이제 자기 삶의 창작자로 거듭나며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야 할 순간을 맞이했다. 만날 수 없는 시대의 교육이 가르칠 것은 박제된 교과서 속의 고리타분한 이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창작의 기술이다.

많은 이들이 손을 움직이며 가까이 있어 몰랐던 당연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소비에 휩싸여 잠시 잊었던 일상의 예술에 다시 눈뜨게 되면 좋겠다. 떨어져 있지만 잊히지 않도록 서로를 호명하며, 오늘의 고독을 위로하는 노래를 함께 부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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