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나무 곁에 머물러야 할 때

글 |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 2020-06-30

도시에는 나무가 많다. 절대 숫자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종류만큼은 여느 산골이나 심지어 깊은 숲보다 훨씬 다양하다. 나무를 베어내고 일군 도시에서 살기 위해 사람들은 나무를 심었다. 공기 정화에서 환경 미화까지 까닭은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심고 키웠다. 자생하는 종류들 위주로 이루어진 자연 마을보다 더 많은 종류가 도시에 자리 잡게 됐다.

회색 도시의 길가를 지키며 나무들은 뿌리 내리고 도담도담 자랐다. 자동차 매연과 공해, 미세먼지를 빨아들이며 매캐한 바람을 맑게 씻어내며 자랐다. 마침내 도시에서 나무는 작은 도시 숲을 이뤘다. 도시의 숲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찾아왔다. 나뭇잎 위에서 혹은 줄기 껍질 틈새에서 작은 벌레들이 꿈틀거렸고, 나뭇가지 위에는 새들이 찾아와 노래 불렀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도 따라서 깃들었다. 숲을 이룬 나무는 사람을 품었다. 옹색하지만 도시에 자연이 살아났다.

세월 흘러 나무가 커졌다. 나무를 베어낼 순간이 다가왔다. 처음에 나무를 심을 때처럼 까닭은 많았다. 하물며 합리적이었으며, 절박하기까지 했다. 도로변의 가로수는 교통신호판을 가리고 전깃줄을 휘감는 장애물이 됐으며, 아파트 울타리의 나무는 남쪽으로 낸 창으로 들어오던 밝은 햇살을 막았다.

‘세계 3대 가로수’로 불리는 양버즘나무의 가지를 정사각형으로 잘라냈다. 창졸간에 나무는 대형 주사위 모양으로 공중에 솟아올라 도로의 살풍경한 담벼락이 됐다. 상가의 간판을 가리는 나무의 무성한 가지를 잘라낸 건 물론이다. 나무보다 먼저 사람이 살아야 했다. ‘천국의 나무’로 불리는 가죽나무도 표적에서 피하지 못했다. 널찍이 뻗은 가지가 바람에 부러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 붉은꽃매미의 서식지라는 이유까지 보태졌다. 더러는 뿌리째 뽑아낸 뒤 다른 나무로 바꿔 심으며 ‘수종갱신’이라 했다. 아파트 베란다에 그늘을 드리우던 나무도 잘라냈다. 줄기를 댕강 잘라냈고, 무성했던 나뭇가지를 모조리 잘라냈다. 전봇대처럼 기둥만 댕그마니 남겼다. 교통신호판이 드러났고, 남향의 아파트 베란다로는 찬란한 햇살이 비쳐들었다.

스스로를 ‘주인’처럼 생각하는 도시인의 삶을 방해하면서 나무가 도시에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가차없었다. 새들의 보금자리가 무너졌고, 나무껍질 속에서 수런거리며 알을 낳고 애벌레를 키우던 숱한 곤충들이 살 곳을 잃었다. 더불어 그들과 공생하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생물도 사라진 건 도시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이즈음, 때맞춰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바이러스였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던 생명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수굿이 헤맸던 것이다. 몰아낼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찾아온 그들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매우 조용히 찾아왔다. 그건 소리 없는 천둥이었고, 공포의 벼락이었다.

사람의 일상은 정지됐다. 미소짓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야 했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손 한 번 마주 잡을 수 없었으며, 좁다란 엘리베이터에서도 서로의 눈치를 보며 거리를 둬야 했다. 사람은 반가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의 몸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바이러스의 운반자였다. 모두가 경계의 대상이었다.

도시든 산골이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세상의 숱하게 많은 생명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곳이다. 어떤 생물 종도 홀로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바닷물 1mL에는 약 1천만 개의 바이러스가 들어있다. 은하계의 별보다 많은 숫자다. 나무도 바이러스도 사람의 편의를 위해 몰아낼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 사람이 멸종시킨 바이러스는 천연두와 우역바이러스밖에 아직 없다.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도 필경 불가능을 향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도시라는 척박한 자연 환경에서도 생명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든 박테리아든 마찬가지다. 끝없이 살아남으려 안간힘 쓰게 마련이다. 사람에 의해 잠시 자리를 떠났던 바이러스는 필경 숙주로 삼아야 할 새로운 생명체를 찾아 돌아오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살 곳을 찾아 헤매는 건 생명 가진 것들의 자연스러운 이치다. 사람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제 살 자리를 찾아 헤맨 것이다.

마침내 바이러스는 주변에서 가장 많은 생명체인 사람의 몸으로 살 자리를 옮겨왔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습격한 것이 아니었다. 바이러스가 존재하던 자리에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어떤 도시도 처음에는 다른 생명의 보금자리였다. 사람의 과도한 주인 노릇에 쫓겨난 다른 생명들이 제 살 곳을 찾아 얄궂게도 사람의 몸속 깊은 곳에 찾아든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곁의 생명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는 아니라 해도 가장 가까이에서 사람보다 더 크게, 더 오래 살아가는 나무 한 그루 앞에 가만히 머물러야 할 때다. 자연의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더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나무 없는 곳에서 찾아낼 수 있는 평화와 안녕은 단언컨대 “없다.”

* 글 │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이런기사는 어떠세요?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나무 곁에 머물러야 할 때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나무 곁에 머물러야 할 때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적응적 진화와 확장 : 새로운 정보 주체의 탄생과 미디어의 미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적응적 진화와 확장 : 새로운 정…

신종바이러스 사태의 근본 원인을 생각한다

신종바이러스 사태의 근본 원인을 생각한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관계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딜리버리

코로나-19가 불러온 관계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딜리버리

<기생충>과 그 이후... 돌출적 사건이 되지 않아야 한다.

<기생충>과 그 이후... 돌출적 사건이 되지 않아야 …

미래 사회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미래 사회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한 해를 시작하는 힘찬 '문화 한 걸음'

한 해를 시작하는 힘찬 '문화 한 걸음'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활동의 사회적 가치

문화예술 사회적경제 활동의 사회적 가치

도시침술과 스마트시티

도시침술과 스마트시티

부천문화재단 뉴스레터 구독신청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이메일을 통해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메일링 서비스와 관련하여 개인정보 제공 및 이용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