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관계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딜리버리

글 | 김유진(문화기획자) · 2020-03-31

내 생애에 ‘판데믹(pandemic)’을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스, 메르스 등을 거치며 전염병이 일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경험을 했음에도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국경이 닫히고, 유럽 의료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IMF를 능가하는 경제적 위기를 논하는 일이 생길 것이란 상상은 하지 못했다.

아직 치료법이 없다고 한다. 최선의 대응법은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라 한다. 말이 좋아 ‘사회적 거리두기’이지 사실상의 집안 감금이나 마찬가지인 날들의 연속이다. 답답하고 언제쯤 이 위기가 해소될까 하는 뭉근한 불안이 일상을 잠식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불안은 견딜 만한 것이다. 사회적 토대가 약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취약 계층이 전염병의 최대 피해자라는 점을 뉴스를 통해 계속 확인하게 되니 말이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드러내며 우리의 민낯을 직시하게 한다.

문화예술계 역시 천재지변과 전염병에 취약하다. 사람이 모이는 일이 주된지라 코로나 시국으로 각종 공연, 축제, 워크숍, 회의들이 취소되었고 거대한 활동의 공백이 생겨났다. 그렇지 않아도 문화예술계는 공모사업이나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존이 높은 편이라 행정의 사이클을 따라 매년 1~2월이 비수기인데 올해는 비수기가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다. 자영업과 유사한 임의단체, 개인 프리랜서의 비중도 높은데 다들 이 혹독한 시절을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안부가 걱정되고 문화예술계 구성원으로서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지 책임감을 느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 움직이는 경험

그러던 중, 젊은 예술가와 기획자에게 조건 없이 10만 원씩 개인 후원하겠다는 서울문화재단 오진이 전문위원의 글을 보았다. 바로 소액이지만 금액을 보탤 수 있다는 댓글을 달았고, 그 아래 권기원 기획자 역시 합류 의사를 밝혔다. 세 명은 톡방을 개설해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공동으로 포스팅을 작성해 공유하고 신청자를 기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청 문의보다 후원 금액을 어떻게 보태야 하냔 문의가 먼저 왔고, 자꾸만 왔다. 이틀 만에 400만 원이 모였는데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침묵 속에 숨어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아무래도 마음을 살피는데 섬세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단돈 10만 원이 급해 손을 내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다. 하여 방법을 바꿨다.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기로. 주변 사람들에게 후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물었고 소개받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돌렸다. 그렇게 후원받은 사람들이 다른 친구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활동이 탄력을 받으면서 페이스북 메신저로 직접 도움을 구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일단 후원 신청자가 확인되면 후원자와 매칭하는 작업을 하였다. 후원금을 모아 지급 대행하는 방법이 더 편할 수 있었지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후원자가 구체적 개인에게 직접 송금하길 바랐고, 후원받은 쪽에서도 자신을 지지하는 구체적 개인의 존재를 느껴주었으면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송금한 대상은 독립영화 감독, 오보에 연주자, 소설가, 문화예술단체 청년 대표, 예술대생, 인체모델과 사진가, 공연기획자, 스트릿댄서, 미술이론가 등 너무 다양했다. 그만큼 위기가 전방위적이라는 뜻일 터이다. 특히, 직접 메신저로 본인이 후원 신청한 경우는 거의 청년들이었다.

처음에 모인 400만 원을 다 매칭하고 나서도 후원금을 보태겠다는 분들이 계속 연락을 주셨다. 고민에 빠졌다. 일이 더 커지면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조직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후원 대행 기구를 만드는 일은 우리의 지향이 아니었다. 우리는 자발적 개인들이 자신의 주변을 살피며 실핏줄처럼 관계를 맺어나가는 풍경을 보고 싶었다. 때문에 톡방 회의를 통해 후원금 받기는 종료하고 후원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캠페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캠페인의 이름은 잠시 목을 축이라는 의미에서 ‘#오아시스딜리버리’라고 붙였다.


연결의 감각을 배웠다

실은 #오아시스딜리버리의 최초 발원지는 다큐계이다. 김선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10만 원 후원을 시작하고 김옥영 방송작가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다시 김옥영 작가의 글을 보고 오진이 위원이 영감을 받아 문화예술계에서도 진행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캠페인에 이름이 붙으니 거꾸로 다큐계에서 호응해 주며 계와 계를 넘어 느슨한 연대가 생겨났다. 홍기원 한예종 연극원 교수, 남인우 연출가 등 문화예술계에서 매개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도 나타났고, 여러 언론에서 취재 요청도 왔다.

판데믹은 거대한 사건이고 개인이 보탤 수 있는 힘은 희미하다. 그럼에도 #오아시스딜리버리 캠페인을 통해 타인의 삶에 보탬이 되려는 마음의 면면을 느꼈고 이런 활동의 핵심적 가치는 집적된 금액의 규모라기보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자체에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닌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바람직한 변화라 본다. 자신의 집과 방에 고립된 이 시절에 사회적 거리는 오히려 더 가까워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자

#오아시스딜리버리 캠페인은 2월 말에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드문드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노력한 사람들의 기대만큼 확산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캠페인의 난이도 때문일 것이다. 일단 여유분의 몇십만 원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문턱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눈여겨본 지점은 경제적 결핍이 아니라 관계의 결핍이었다. 여러 사람의 비공개 문의를 받으면서 많은 이들이 주변인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선뜻 묻거나 문화예술계에 속하지만, 지인 아닌 이들을 찾아 나서는 일을 두려워한다고 느꼈다. 꼭 문화예술계에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진영(집단)에 속해 선행에 참여하려는 의사를 발견하기는 쉽지만, 자발적이고 구체적이며 평등한 연대의 경험을 찾기는 어렵다. 전염병과 기후위기 등으로 인한 재난은 앞으로 삶의 상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되는데 민간의 연대 역량을 키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단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국가와 지자체들은 재난기본소득 등 긴급 구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불을 끈 이후이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다를 것이라 한다. 재난이 이미 일상에 침투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위기의 상시화는 심화하고 있던 양극화 현상과 맞물리며 사회적 활동과 관계를 축소시키고 국수주의를 태동할 것이라 한다.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 국면에 “‘일단 폭풍이 지나가면 어떤 세계에서 살 것인가’를 자문해봐야” 한다며 세계적인 협력과 신뢰의 정신이 살길이라는 기고문을 발표했다.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계는 향후 사회적 관계의 공동화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예술계는 물리적 거리두기로 인해 온라인 공간이 사회적 관계의 매개 장소가 되어가는 지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강의 등을 통해 급작스럽게 전 국민의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문해력)가 향상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한편에서는 기술에 대한 관념적 지지를 일삼거나, 반대편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읽는 데 무심하다. 기술에 대한 친자본적이고 낙천적인 주장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과 별개로 이미 생활 속으로 침투한 기술의 영향력을 알아채고 실천적 지형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앞으로 필요할 것이다.

한국경제, [전문] 유발 하라리 "한국서 배워라…국수주의보다 글로벌 연대", 2020.03.22.

* 글 │ 김유진(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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