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기생충>과 그 이후... 돌출적 사건이 되지 않아야 한다.

글 | 정민아(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 2020-02-28

오랫동안 한국영화계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칸영화제 그랑프리, 또 하나는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올해부터는 명칭이 바뀌어서 ‘국제장편영화상’이다) 부문 노미네이트.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목표를 뛰어넘는 결과를 받았다. 영화애호가라면, 특히 1980년대 한국영화 암흑기 시절부터 영화를 봐온 마니아라면, 내가 숨 쉬고 있는 당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기생충&>의 쾌거는 아무리 칭송해도 모자라다.

봉준호와 <기생충>은 한국영화로서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나갔다. 뭐든 한국영화 최초지만, 놀라운 것은 세계영화사에서도 기록적인 사건이다. 칸영화제 그랑프리와 오스카 작품상을 동시에 석권한 단 세 작품 중 하나고(<잃어버린 주말>(미국, 1946), <마티>(미국, 1955)), 오스카 국제영화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최초의 작품이며,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비영어 영화, 최초의 아시아 영화, 최초의 여성제작자 영화다. 전 세계에서 180개가 넘는 상을 거둬들였으며, 프랑스 세자르영화상 등 아직도 굵직한 영화상이 남았다.

<기생충>은 한국사에서도 기억해야 할 영광스러운 우리 모두의 역사다. 이 영화는 한국개봉 당시 천만 관객을 넘겼다. 이제 남은 것은 해외 각국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얼마나 갈아치우냐이다. 오스카 4개 부문 수상, 그것도 더 쪼개서 주요부문이라고 불리는 5개 부문 중 남녀주연상을 제외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모조리 가져온 영화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져서 해외 박스오피스에서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아마도 북미권 개봉 비영어권영화의 기록을 깨는 일 정도가 앞으로 남은 고지일 것이다(기록은 중국영화 <와호장룡>이 가지고 있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민족의 쾌거’라는 식의 낯부끄러운 수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어쩐지 ‘Korea’의 국격이 올라간 것만 같고, 백인들도 더 이상 한국인을 깔보지 않을 것 같다. 아카데미시상식이 끝난 지 이제 한 달도 되지 않았으니 잠시 동안은 이 기쁨을 누려도 된다. <기생충>은 한 감독의 영예를 넘어서 한국영화 관객이 받은 선물이며 한국인의 영광이기도 하다. 이는 1919년에 처음으로 한국 땅에 우리 손과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100년의 마침표를 찍은 사건이며, 새로운 한국영화 1년을 시작하는 가슴 설레는 시작점이다. 그러면 이제 진정하고 한국영화계에 남겨진 새로운 과제가 무엇인지 점검해봐야 할 때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한국 관객의 한마음일 것이다. 칸 그랑프리, 오스카 작품상, 해외 흥행 기록이 <기생충>과 봉준호의 돌출사건으로 끝나서야 하겠는가. 우리는 그다음 칸 그랑프리가 기다려지고, 다음 오스카 수상 소식이 기다려진다. 한국영화 관객은 아직도 배가 고프고, 그 허기짐과 식탐을 탐욕스럽다고 누구도 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앞으로 ‘봉준호 다음은?’을 외치며, 또 다른 한국 감독, 또 다른 한국영화를 찾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던 중국영화의 세계적 열기, 2000년대 초중반에 보여준 이란영화의 신선한 충격을 관찰해보면 당시 세계영화계에 중국과 이란 감독들은 집단적으로 계속 등장했다. 임권택,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등 1기 세계영화계 진출 감독들 바로 다음에 봉준호가 서 있다면 그다음 2기를 바라보게 한다. 앞서 나열한 감독들이 새롭게 등장하여 활약했던 시기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중반이다. 이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갈 감독들이지만 많은 사람이 진단하듯 한국영화의 활기는 2000년대 초중반만 못하다.

제일 큰 문제는 한국영화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천만 관객을 끄는 영화는 매년 나오고 있지만, 스타일이나 스토리가 획일화되어 있고, 그 영화가 그 영화 같다는 것 때문에 또다시 한국영화는 위기이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한다. 한국영화는 꾸준히 외국영화 대비 점유율을 50% 이상 지키고 있고, 관객은 한국영화를 좋아하며 영화산업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영화관은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먹고, 쉬고, 공부하고, 놀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만족도도 높다. 그런데도 다들 문제라고 한다.

그 문제는 ‘다양성’에 있다. 1980년대, 1990년대 홍콩영화의 활기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아름답고도 재밌는 홍콩영화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그 활력은 시들해지고 말았다. 고만고만한 홍콩영화의 향연이 더 이상 새롭지 않았다. 한국영화 산업 역시 지금 정점에 올라와 있을 때 앞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최근 ‘포스트 봉준호 법’이란 것을 영화종사자들이 준비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에게 묻지도 않고 법 명칭에 감독 이름을 넣은 것은 실례지만 요즘 무슨 콘텐츠건 ‘봉준호’ 이름이 들어가야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관종스러운 이름임을 알면서도 쓴다. 그만큼 영화계가 절박하다는 증거다.

이 법은 영화산업 구조 개선책을 담고 있는데 간단히 정리해서, 대기업의 영화 배급∙상영 겸업 제한,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금지,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한국영화산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3사가 현재 극장 입장료 매출의 97%를 차지하면서 배급시장을 장악하였고, 극장과 결합한 배급사들은 자사 극장을 살찌우는 도구가 되었다. 특정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 80% 이상을 장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는데 10개 관 중 8개 관이 한 영화만 상영하고, 나머지 2개 관의 영화는 그나마 교차 상영하고 있어 보고 싶은 영화는 가까운 극장에서 볼 수가 없다.

좋은 상품이니 많은 소비자가 찾는다는 말로 지나치기에, 문화의 풍성함이 ‘다양성’에 비롯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영화, 대기업 제작사에 쏠림 현상은 감독의 역량이나 관객의 소비 패턴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않으면 이러한 현상은 계속된다. 그래서 현재 기울어진 운동장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 영화법을 새로 정비해야 하건만 국회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10년 이상 여러 국회의원이 개정 영화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이제 곧 총선, 현재 계류 중인 영화법안은 폐기될 것이고, 새로운 4년 임기 국회에서 영화법 제출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생충>과 봉준호가 세계영화계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고, 예술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상황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위트와 비판 정신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했다. 가장 잘하는 것을 했더니 세계인들도 호응했다는 말이다. 그런 봉준호도 신인 시절이 있었고, 그가 만든 나이브한 데뷔작을 틀 수 있는 영화관이 있었다. 데뷔작으로 실패를 맛봤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실패한 신인 감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제 시작하는 독립영화, 자기만의 개인적인 비전으로 승부하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공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고, 멀티플렉스의 스크린 독과점 규제를 해야 하는 이유다.

이제 개인의 선택이나 역량으로 돌리며 요즘 말로 ‘맷돌에 갈아 넣어서’ 요행을 바라는 환경에서는 포스트 봉준호도 포스트 기생충도 어렵다. 유럽이나 북미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독과점 상한제나 독립예술영화 지원제, 전용관 지원제가 있어서 새로운 영화인, 독특한 자기만의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과 영화가 관객과 쉽게 만나며 이들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영화들도 함께 숨 쉬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 무수히 많은 또 다른 봉준호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 정민아(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이런기사는 어떠세요?

문화권 보장과 문화도시, 그리고 문화헌법 개헌과제

문화권 보장과 문화도시, 그리고 문화헌법 개헌과제

아깝지만. 다행히도. 그럼에도

아깝지만. 다행히도. 그럼에도

로컬뉴딜과 로컬회복력

로컬뉴딜과 로컬회복력

기후위기는 언제 ‘첫 번째’가 되나요

기후위기는 언제 ‘첫 번째’가 되나요

예술하는 손, 연결하는 손

예술하는 손, 연결하는 손

언택트 시대, 축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언택트 시대, 축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나무 곁에 머물러야 할 때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 나무 곁에 머물러야 할 때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적응적 진화와 확장 : 새로운 정보 주체의 탄생과 미디어의 미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적응적 진화와 확장 : 새로운 정…

신종바이러스 사태의 근본 원인을 생각한다

신종바이러스 사태의 근본 원인을 생각한다

부천문화재단 뉴스레터 구독신청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이메일을 통해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메일링 서비스와 관련하여 개인정보 제공 및 이용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