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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의 의의와 과제

글 | 서우석(서울시립대 교수)

생활문화의 의의와 과제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로 생활문화정책의 성장을 꼽을 수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생활문화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지자체의 생활문화조례 제정이 줄을 잇고 있다. 시민의 문화동아리 활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 급증했다. 생활문화센터가 전국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지역주민의 생활 현장 속에서의 문화공동체를 발굴해 지원하는 “생활문화공동체 지원”이 지난 10년 동안 계속됐다. 그렇다면 생활문화를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은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혹은 정책의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내실은 그에 못 미치는가? 개별 사업 평가는 있으나 전반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생활문화정책이 지향하는 시민 참여의 자율성과 지속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검증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생활문화정책의 경과를 바탕으로 그 의의와 앞으로 고민해봐야 할 과제들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생활문화정책이 문화정책의 영역에서 가지는 의의(혹은 가능성)는 기존의 문화정책과 주체, 공간, 내용, 방식의 차원에서 비교할 때 명확해진다. 전문예술인에 한정되었던 지원을 문화소비자였던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에까지 넓혔다는 점에서 ‘주체’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또한 주거와 공유 공간에서 문화예술의 교육, 연습, 창작이 이루어짐으로써 전문예술공간을 넘어서 일상으로 문화 활동이 스며드는 ‘공간’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이와 함께 생활문화에서는 한정된 장르의 예술 활동을 넘어서 요리, 목공과 같은 다양한 일상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병존함으로써 ‘내용’의 확장 가능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사업 취지에 맞는 단체를 공모해 특정한 사업이나 기간 에 한계를 두고 지원하는 방식을 넘어서 시민의 주체적인 참여 기회를 늘려 정책 결정의 주체로까지 발전시키는 ‘방식’의 확장 가능성이 있다.

생활문화의 의의는 문화정책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적 차원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생활문화의 과정에서 시민이 모임을 운영하기 위해 규칙을 정하고, 의견을 모으며, 공동체적 실행을 유지해 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다. 생활문화 활동에서 만들어지는 만남의 기회, 네트워크 형성과 같은 것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증대이고, 지역사회 역량 강화(Community empowerment)를 위한 기반이 된다. 특히, 생활문화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만남은 고립의 위험이 가중되는 ‘무연사회’에서 그 가치가 더 커진다. 어울림의 욕구와 간섭받기 싫은 지향이 충돌할 때, 생활문화를 통한 만남은 유력한 대안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활문화정책은 사회혁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생활문화에서 이루어지는 선물경제를 지역통화와 연결할 수 있고, 사적 자원의 공공 활용(예컨대, 공간의 시간대별 공공 이용)을 효과적으로 증대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문화정책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과와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를 볼 때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민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첫째, 문화예술생태계 조성의 문제다.

문화정책에 가용한 재원과 공간, 자원, 열정을 균형 있게 투자하고 있는지 문제가 제기된다. 직업예술가 대상의 창작지원이 답보 상태에 있거나 위축되는 상황에서, 생활문화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급증함에 따라 생활문화정책의 성장을 ‘독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생활문화와 직업예술가의 관계가 제로섬 관계는 아니지만, 직업 예술가 집단과의 관계를 통한 문화예술생태계 조성을 실현해야 한다. 생활문화를 통해 직업 예술가의 시장이 확대될 수도 있고, 지역 활동 여건이 개선될 수도 있다. 문화예술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생활문화와 직업 예술가가 공생하며 발전할 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져야 한다.


둘째, 생활문화정책이 시민의 평균적인 감성과 생활 여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생활문화정책과 관련 있는 통계를 2018년의 「문화향수실태조사」에서 찾아보면, 창작발표를 통한 문화예술행사 참여율은 9.0%, 문화동호회 참여율은 7.6%, 문화자원봉사 참여율은 6.9%에 머물고 있다. 비록 증가 추세이지만, 생활문화가 여전히 제한된 집단에만 상관된다. 그동안 생활문화정책의 중심으로 동호회 활동이 자리 잡으면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있는 고관여자 편향이 발생한 것이다. 더 나아가 생활문화 사업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생활문화에 더욱 특화된 시민”이 요구된다. 생활문화의 성장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시민의 일상적인 감성이나 삶의 여건과 멀어질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생활문화가 특정한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국민 저변으로 접점을 넓히기 위해서는 여러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일상 속 문화실천 자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문화정책의 프레임을 넘어서 시민의 일상 문화에 대한 관찰이 요구된다. 현대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일상생활(La vie quotidienne)에 대한 관심이나 위르겐 하버마스의 생활 세계(Lebenswelt) 식민화에 대한 논의는, 일상이야말로 사회 구조의 모순이 작용하면서도 해방적 가능성을 품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일상성에 대한 사회과학적 관심을 통해서 생활문화가 가지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다른 한편으로, 정책적 차원에서는 일상의 문화 실천에 인식을 통해 생활문화를 ‘매력 있는’ 개념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개념 자체가 국민들에게 어떠한 어감으로 다가오는지도 중요하다. 애초에 일본의 문화정책에서 빌어 온 생활문화 개념이 오늘날 게임에 몰입된 청소년이나, 드라마, 예능에 열광하는 시청자에게 흡인력 있는 개념일까? 개념의 어의는 물론 어감은 지속해서 변한다. 연관되는 개념이나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바른 생활을 강요하는 과잉국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지 않고,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생활문화정책을 어떻게 표상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글 | 서우석(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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