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국내외 문화예술계 전반 정책적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듣는 '칼럼'입니다.

당신의 문화정책은 무엇입니까?

글 | 고영직(문학평론가) · 2019-05-03

강원도 양양에서 나고 자란 이옥남 할머니의 농사일기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읽는다. 1922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송천마을로 시집 와서 평생 ‘호미’를 놓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이옥남 할머니의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기록이다. 부모 복 없고, 재산 복 없고, 오로지 ‘일복’만 타고난 이옥남 할머니는 영감과 사별한 후 스스로 터득한 글자 연습을 하기 위해 ‘도라지 까서 번 돈’으로 공책을 사서 1987년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있다.


인생은 이옥남 할머니처럼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는 한 사람의 생애사에서 나이듦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발라야 젊어 보이는지 고민하는 항노(抗老) 혹은 안티에이징(anti-aging)만으로는 부족하다. 늙어가는 것을 수용하고 긍정하려는 ‘향노(向老)’의 태도와 감수성이야말로 중요할 것이다.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가 감동을 주는 것은 농적 순환의 삶을 긍정하려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저녁에는 텔레비전과 시간 보내고, 낮에는 호미 들고 밭에 간다. 이문을 보고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귀여워서 키우는 걸 재미로 알고 지금도 농사를 짓는다. 복숭아꽃 피면 호박씨 심고, 꿩이 새끼 칠 때 콩 심고, 뻐꾸기 울기 전에 깨 씨 뿌리고, 깨꽃 떨어질 때 버섯 따며 자연 속에서 일하며 사는 할머니의 일상은 너무나 평범하다. 그러다 문득 “나무는 단풍이 들어도 예쁘고 보기나 좋지만, 사람은 쭈글쭈글한 것이 얼마나 보기 싫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한심하구나” 하며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할머니의 일기에는 농적 순환의 질서를 수긍하며 심플하게 사는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삶’을 살고자 욕망하며 ‘다른 시간’을 구성하려는 할머니의 모습이 등장한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사람의 도리’를 먼저 생각하고, 솟적새(소쩍새)·매미·도토리·노루·방게 같은 미물들에게도 가없는 애정을 쏟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보와 월간 『작은책』을 구독하며 책에 수록된 이오덕 선생을 비롯해 이상석·조향미·추송래 같은 필자들의 글에 깊이 공명하고, 동화작가 권정생의 『몽실언니』와 『한티재 하늘』을 탐독한다. 그렇게 노동하고 묵상하며 사유하는 삶을 중단하지 않는다.

나는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에서 권정생 선생의 『한티재 하늘』에 등장하는 ‘이순이’의 곡절 많은 삶을 생각하며 “잠든 차옥이를 (이옥이가) 안고 젖을 먹이는데 눈물이 괜히 난다”(1999.7.5.)고 적은 대목이 얼른 잊히지 않는다. 자식을 키우는 작품 속 ‘이순이’의 삶에 자신의 삶을 투사(投射)했기 때문이리라. 그런 탓일까. 이옥남 할머니는 『한티재하늘』에 등장하는 ‘수동댁’과 참봉댁 며느리 ‘은애’의 모습과 겹쳐진다. ‘수동댁’은 사람의 도리를 생각하며 한낱 미물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여일하게 갖고 살아가는 인물이고, ‘은애’는 수운 최제우 선생이 집필한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를 읽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도 “상전도 머슴도 없고 모두 형제간”(2권 229쪽)이라는 가치를 구현하고자 실천하는 인물이다.

어쩌면 이옥남 할머니는 권정생의 『한티재하늘』을 읽으며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인간’들의 모습을 닮고자 했고, 그렇게 살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안의 상식은 물론 몰상식과 싸우며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내고,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연대(連帶)하려는 시민의 마음을 구체화하고 생활화한 것은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이옥남 할머니는 한 사람의 위대한 ‘시민’이었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 몸이 아프니 뻐꾹새 소리가 더 처량하게 들린다”고 한 표현에서는 겨우 존재하는 미물들에 대한 가없는 애정을 확인할 수 있고, 산불이 난 이재민들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옷가지 따위를 보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를 읽노라면 사람의 도리는 무엇이고, 인간의 인간됨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건강한 농적(農的) 순환의 삶을 긍정하며 다르게 살고자 하는 시민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간주해도 좋으리라. 이 점에서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 『한티재하늘』 같은 문학/문화적 텍스트들은 이옥남 할머니로 하여금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의 문화정책을 위하여

결국, 나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이를 위해서는 이옥남 할머니의 경우처럼 ‘나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나의 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문화정책이란 말은 아직은 낯설다. 문화정책이라는 말은 언제나 항상 정부 및 지자체 같은 곳에서만 추진하는 것이라는 고정된 이미지가 완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자신의 삶에서도 문화정책은 필요하다. 다른 삶을 상상하고 다른 시간을 살기 위한 나의 문화정책은 자신의 삶을 바꾸는 작은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십여 년 전인 사십대 초반 자유인(백수)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당시 주변에서는 만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공장 밖은 위험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당시 내 마음생태학은 서해안의 뻘밭 같은 황량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당시의 나는 관계의 과잉, 시간의 소멸 상태였다. 좀처럼 나를 위한 시간을 갖지 못했고, 차분한 명랑함의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회사라는 궤도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리듬’을 되찾고 나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퇴사 후 나를 구원한 것은 책읽기였다. 아마도 책읽기라는 유구한 문화예술 행위를 통해 나는 조금씩 나다움을 회복하고, 나 자신으로 사는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 것 같다. 쉽게 말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마음의 근육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결국 누구에게나 나의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자기 앞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철학자가 “비전 없는 백성은 망한다”(함석헌)고 했던가. 이때 무엇이 나를 위한 삶인지 고민하게 하고, 자기 앞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내 안의, 우리 안의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조금 다르게’ 바꿔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과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어하고, 지금의 사회 또는 문명과는 조금 ‘다른’ 사회와 문명의 바깥을 상상하려는 우리 욕망 행위와 관련 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가 정의한 일상성에 대한 재전유를 통해 내 안의 ‘리듬’을 바꾸고 우리 안의 ‘리듬’을 바꾸려는 내 안의, 우리 안의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자기 앞의 인생길을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무엇이 좋은 삶이고 무엇이 좋은 사회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고 간주할 수 있다. 거기에서 한 사람의 문화시민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민은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순간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옥남 할머니처럼 제2의 탄생을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낮아졌다”(제프 딕슨)고 토로하는 이 시대에, 문화예술이 단순히 상품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에 만족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생산하는 문화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문화적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당신의 문화정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 글 | 고영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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