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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주체되는 문화도시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지금종

지역문화네트워크 공동대표│지금종

최근 부천시가 전국 9개 지자체와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예비도시로 선정됐다. 부천시는 ‘생활문화도시 부천-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 듣는 도시’를 비전으로 삼아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수립해 제출했는데 문체부 심의 과정에서 통과된 것이다. 예비도시로 선정된 지자체는 향후 1년 간 예비사업을 추진한 후 문화도시심의위원회의 평가와 심의를 거쳐 문체부로부터 문화도시 지정을 받을 예정이다. 문화도시로 지정되면 문체부로부터 5년 동안 최대 200억 원까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경기도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것으로서 참으로 축하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자축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잠시 중간 점검을 해봤으면 좋겠다. 부천시는 문화도시를 표방한지 꽤 오래되었고, 문화재단 설립도 다른 지자체에 비해 빠른 편이며, 부천판타스틱영화제, 만화, 애니메이션 축제 등 변별성 있는 문화사업들이 안착된 지역이다. 또한 근 몇 년간은 생활문화 사업들이 활성화되고, ‘문화특화지역’ 사업도 비교적 잘 수행되어 왔다고 평가받는 도시이다. 아마도 이번 ‘예비문화도시 선정’의 배경에는 부천시의 이런 문화적 성과들이 인정받은 측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즈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질 필요가 있다. 지금 부천시는 ‘문화도시’로서 부족한 점은 없을까? 처음 문화도시를 표방할 때의 의지와 계획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 ‘문화도시’는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일상에서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감각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 내가 제주 살 때 제주로 여행 온 사람들에게 간혹 들었던 얘기가 있다. “인적 드문 농촌지역이 낯설고 두렵다.”거나 “저녁이 되면 어두워서 무섭다.”는 말이 그것이다. 도시의 인파와 야경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농촌지역의 인구 과소와 불빛 없는 저녁의 어둠이 공포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태적 관점으로 보면, 적절한 인구 밀도와 소등은 쾌적한 자연환경 확보와 생체리듬의 유지 조건일 수 있다. 언젠가 지인과 나눴던 홍콩여행에 대한 소감도 앞의 얘기와 유사하다. 지인은 홍콩여행에서 쇼핑과 음식에 대해 만족감을 표한 반면, 내게 홍콩은 극심한 빈부격차, 과소비와 에너지 낭비를 부추기는 도시, 인구 과밀과 덥고 습한 기후로 인한 질병 발생의 온상 같은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향하는 가치나 감각에 따라 동일한 현상을 접하고도 상반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문화도시의 상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은 쇼핑공간과 영화관, 맛있는 음식점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도서관과 박물관, 공연장, 그리고 다양한 예술 활동이 벌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안전한 보행 길과 공원과 체육시설, 녹지축이 도시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문화도시’는 과연 어떤 도시를 말하는 걸까? ‘문화도시’에 대한 관련 학자들의 개념 규정은 매우 다양하지만 대략 정리해보면, 다양한 문화 활동과 이를 가능케 하는 문화기반시설의 구축,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시환경과 공공공간의 확대, 자연생태계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도시경관, 문화유적의 보전과 활용 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도시’를 조금 더 단순화시키자면 ‘아름답고, 쾌적하며, 재미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도시를 실현한다는 것은 얼핏 보아도 전통적 의미의 문화정책 영역을 넘어서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축과 도시설계, 교통, 환경과 조경, 심지어 경제정책 등과 연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현 주체 또한 정치가나 행정 행위만이 아니라 시민의 협조와 참여 없이는 실현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문화도시’ 사업 추진을 계기로 부천시민의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시민참여를 높이고, 나아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바람이 일길 기대한다. 시민참여의 필요성은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한 당위로서만 논의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행정 영역이 갈수록 고도로 전문화, 분업화되어감에 따라 증대되는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기존 행정조직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민간부문의 전문성과 능력, 시민참여가 필요하다. ‘사회적 자본’에 관한 대표적 학자인 로버트 퍼트넘(Robrt D. Putnam)은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높은 지역 공동체일수록 도시빈민, 교육, 건강, 범죄, 마약, 실업 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보다 성공적으로 해결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파주시에 ‘문발리 마을’이란 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문, 발리에서 생긴 일>이란 마을 사람들이 기획, 제작, 연출, 출연해서 만든 웹 드라마가 발표되어 주목을 받았는데 탁구, 당구, 낚시, 노래, 자전거, 달리기 등 다양한 취미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도자기·가죽공예를 하는 예술가들은 ‘짝작’이라는 협동조합과 카페와 서점을 겸한 협동조합 ‘발전소책방.5’도 만들어졌다. 발전소책방.5에선 정기적으로 저자 초청 강연도 열린다. 이른바 자생적 생활문화가 스스로 진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인이 마을 주민이어서 ‘발전소책방.5’에서 열리는 강연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시종일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발성과 자율성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문발리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자본’의 근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모여서 놀고, 달리다보면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자연스레 행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해법을 찾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상상을 한다. 이렇게 시민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어느덧 아름답고, 쾌적하며, 재미있는 도시가 되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시민이 참여하는 문화 활동을 하다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자신을 새로 발견하는가 하면 자신감이 고양되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공동체에 관한 논의가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삶의 방식이 통째로 바뀌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문화가 갖는 ‘사회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세계적 도시재생 전문가 아르요 클라머(Arjo Clamer)는 문화예술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는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개인들, 그룹들, 공동체들, 사회들 간의 신뢰, 우정, 사랑, 정체성, 공감 등의 가치들이 증진되는 데에 있어서 각 단위들의 다양한 문화적 습속, 제도, 신념, 활동과 산물들이 미치는 영향을 총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문화예술 활동-소셜라이징-사회적 자본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의 첫 고리가 문화예술 활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 세대, 지역을 골고루 배려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최근 부천문화재단이 부천지역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꿈꾸는 아동위원회’ 참여자를 공모한 것처럼 다양한 시민을 주체로 내세울 수 있는 방식의 문화 활동으로 기획되어야 할 것이다. 들러리, 대상화와 동원, 단순참여, 고답적인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은 시효가 만료된 지 오래이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인구학적 특성도 고려돼야 한다. 예컨대 1인 가구, 비혼자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셜라이징도 필요하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천시도 양극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많다는 게 체감된다. 아무래도 빈곤한 사람들은 문화 활동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문화자본’이 중요한 시대에 무관심을 이유로 문화 소외 계층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행정이나 중간지원조직은 이러한 현실에 부합할 수 있는 대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모든 문화 활동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주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재미있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천시의 문화도시 추진은 전담조직 구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논의와 의결구조로서의 ‘부천시문화도시추진위원회(가칭)’와 중간지원조직으로서의 ‘부천시문화도시센터(가칭)’를 구성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시민참여를 높이기 위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인원 제한 없이 개방하지만 ‘부천시문화도시추진위원회(가칭)’ 안에 운영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일상적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사단법인으로 비유하자면, ‘부천시문화도시추진위원회(가칭)’가 총회 역할을 하는 셈이다. 행정, 혹은 부천문화재단과의 협치를 위해 책임 있는 인사가 파견 형식의 당연직 운영위원을 맡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운영위원은 전체 위원회에서 추천 혹은 자원자에 대한 추첨을 통해 선임함으로써 시민참여를 높일 필요가 있다. 다만 위원회는 구성의 대표성, 다양성, 개방성, 참여 기회의 균등성, 운영의 투명성 등을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위원회 운영에 있어서는 이해관계의 중립성과 민원성 사업 탈피, 전문성의 보충 등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야 하고, 출범 단계에서부터 시민참여계획서를 작성하며, 전문성과 상시성을 올려서 참여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또 사업 수행 시에는 시민과 전문가 사이의 눈높이에 맞는 소통과 학습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평적 협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데 문화는 물론이고, 건축과 도시계획, 환경, 교통, 교육과 복지, 경제 등 문화도시 사업과 관련성이 있는 행정, 중간지원조직과 통합적 지역 접근과 해법을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혁신적 지역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도시문제를 칸막이 행정과 정책으로만 접근할 때 효율성이 떨어지고, 각각의 성과가 선순환 발전하지 못하며, 시민사회의 성장과 지속적 지역발전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자체 행정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따라서 ‘부천시문화도시추진위원회(가칭)’를 다양한 사회 영역들 사이의 융합-중첩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체계로서의 위상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천시문화도시센터(가칭)’는 위원회 운영 및 협치 관련 실무지원, 소셜라이징 및 다양한 소통, 학습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시민의 역량 강화, 시민 지원사업에 대한 실무 지원, 조사와 데이터베이스 구축, 홍보, 광범위한 네트워크 구축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점 공간이 확보되어야 시민과의 일상적 접점이 만들어지고, 소셜라이징과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다. 교류, 교육, 활동, 전시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혁신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이 필요한 것이다. 센터는 무엇보다도 시민참여를 높이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참여 기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적용이 필요하다. 소셜미디어와 소셜라이징, 리빙랩 등 ICT기술을 통한 시민참여 촉진과 위원회 운영에서의 민주적 소통방식에 대한 적용, 시민참여를 위한 조례 제정 및 제도 개선, 문화도시 사업에서의 시민참여예산제 도입 등 가능한 모든 방법들을 적용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참여 시민에 대한 보상체계를 확실하게 세우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말하자면, 회의에 참여하는 시민에게 지역상품권, 혹은 지역화폐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외재적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인데 시간과 재능을 투입하는 일에 당위성만 앞세워 무보수로 참여를 요청하는 것이 별로 정당하지도, 효과도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원칙과 기준 등은 부작용이 없도록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서 ‘영등포공유원탁회의 시작파티’를 한다는 영등포문화재단의 공지를 접했다. 영등포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참가자에게 5분 발언 기회를 주겠다는 내용이다. 눈이 가는 대목은 ‘파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형식이 문화 활동에 보다 많이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담 없이, 재미있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파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파티, 은퇴한 장년들의 파티, 경력 단절 여성의 파티, 예술가들의 파티 등을 열어 그들의 사는 얘기를 들어보고,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공공의제를 찾아보면 재미있지 않겠나. 공공이 하는 일이 반드시 딱딱하고, 심각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지역의 자원을 연결함으로써 지역의 주체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문화도시를 만드는 시작점이 아닌가 싶다.


‘한국은 재밌는 지옥, 북유럽국가들은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주로 쾌락과 연관된 의미로 사용될 것이다. 한국은 도시에 사는 한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술을 먹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닌가. 그것이 용인되지 않는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일일 것이다. 나 또한 24시간 작동체제의 혜택을 간혹 보지만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면에 존재하는 지옥 같은 현실이 섬뜩하게 다가올 때면 앞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24시간 작동 체제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해서도 안 되지만 사람들이 삶의 조건에 떠밀려서 체제 안에 흡수되지 않도록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노력 중에 문화가 차지하는 의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에 ‘문화성’을 불어넣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재미있는 천국’을 꿈꾸는 건 지나친 욕망일까.


나는 부천시가 ‘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듣는 도시’를 넘어 ‘말할 수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돕는 도시’가 되길 희망한다. 그래서 성공적인 문화도시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민참여’이고, 시민이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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