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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SOC라 쓰고 생활 ‘속’이라 읽는다

오진이│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새해 문화정책의 화두 중 하나는 ‘생활SOC’가 될 전망이다. 총 예산이 8조7천억 규모인데 그 중 문화체육관광부 몫이 788억이다. 정책브리핑에선 국민체육센터 160곳과 시·군·구별 작은 도서관을 1곳씩 새로 짓고, 노후도서관은 북카페형 공간 등으로 새단장한단다.


‘생활SOC’는 먹고, 자고, 일하고 쉬며 아이를 키우거나 노인을 부양하는 등 일상에서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반시설(문화, 체육, 보육, 의료 등)로 정의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에서 “앞으로 우리나라는 성장 중심 국가에서 포용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생활SOC를 포용국가의 기본 인프라로 삼겠다”는 선언을 했고 이후 이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었다.


지난 12월, ‘지역밀착형 생활SOC 정책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한겨레 청암홀에서 열린 컨퍼런스는 성황을 이뤘다. 토론자 중 한 명이었던 국토부 장관정책보좌관 이주원은 1) “생활 SOC는 사회적 자본 구축이라는 시대적 의미를 갖는다”며 ‘신뢰자본’, ‘인내자본’, ‘연결(네트워크)자본’이 중심이 되는 지역혁신의 거점이자 사회혁신을 예고했다. 생활 SOC는 포용성, 지속성장, 지역과 사회혁신, 주민참여 등의 사회적 가치가 자본으로 축적되는 마을민주주의 인프라이고, ‘뉴딜’과 ‘생활SOC’ 이 두 가지 플랫폼 정책을 지역에서 잘 활용한다면 포용국가의 완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SOC’를 검색해 보면 지역별 예산 유치 규모를 자랑하기에 급급하고 그 내용은 도서관 짓고, 체육관 짓는 등 건설 계획 일색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펴낸 2) ‘2020 문화예술 트렌드 분석 및 전망’에서도 생활SOC에 대한 기대를 확인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공급형으로 진행되는 방식으로는 생활문화·생활예술 분야의 자생적 성장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엿보인다. 생활SOC를 이용하고 꾸려갈 활동 주체들의 필요에 의해 기반이 만들어져야 지속가능할 수 있는데, 정책과 제도에 따라 기반이 만들어지는 현 상황에선 지역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과제는 ‘생활SOC’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인식의 전환이다.
1세대 SOC는 철도, 도로 등 국토를 지리적으로 연결하는 ‘물리적 SOC’로 산업화시대의 인프라였다. 다음으로 등장한 2세대 SOC는 ‘IT기술 SOC’로 정보화시대의 인프라였다면, 이제 3세대 SOC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돌봄 장치이자 ‘지역공동체 문화시대의 인프라’다.


각 세대의 SOC는 공급방식에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
1세대나 2세대 SOC가 중앙정부·지방정부, 그리고 공기업·대기업 중심이었다면 3세대 SOC는  이용자인 시민들이 당사자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생활SOC’라 쓰고 생활 ‘속’이라 읽는다. 여기서 ‘속’은 지역, 이웃, 가족, 동료 등을 비롯해 내 마음 ‘속’까지 포함한다. ‘겉’으로만 비교하고 경쟁하며 숫자 놀음이나 단기간 성과로만 포장하기에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심각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경제 불황과 인간성 상실에 다다른 위기에서 삶을 버텨낼 수 있을까?
 
드리트리 오를로프가 쓴 ‘붕괴의 다섯 단계’에서 금융, 상업, 사회, 정치, 문화 분야에 이르는 붕괴를 거치고 나서야 삶의 회복력을 다시 모색하듯, 3) 선망국(先亡國)이 되어버린 ‘헬조선’에서 이제 ‘생활SOC’로 동시대의 난제를 풀어나가 선망(先望)의 대상이 되어 보자.


조현이 쓴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를 보면 생활SOC를 스스로 갖추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KBS ‘다큐 3일’에 소개된 파주 문발동 28통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분향소가 없었던 파주에 분향소를 만들고 13번의 촛불 문화제를 하며 서로 알지 못했던 이웃들의 삶의 방향에 대해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만 잘 사는 삶’이 아닌 ‘함께 잘 사는 삶’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어간다. 성공회 최석진 신부가 내준 1층 마당공간은 지역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 되었고, 기존의 ‘커피 발전소’와 그 속 동네책방 ‘발전소 책방.5’는 아지트가 되어 동네 이웃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문발동 사람들처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생활SOC 또한 전국적으로 몇 개소를 언제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에 머물지 말고 ‘사람’에 대한 투자와 발굴, 그리고 네트워크까지 나아가야 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좋은 콘텐츠가 감동으로 이어져 또 좋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그 안에서 믿음이 쌓일 때 비로소 정책에서 말하는 ‘신뢰자본’, ‘인내자본’과 같은 사회적 자본을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문화도시 예비지정을 받은 생활문화도시 부천이 ‘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 듣는 도시’를 비전으로 삼은 것처럼 말이다.
                 


참고자료
1) 국토교통부·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공동주관 「지역밀착형 ‘생활SOC’정책의 쟁점과 과제」자료집 p.74 부분 인용
2)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20 문화예술 트랜드 분석 및 전망개요 부분 인용
3) 조한혜정, 「선망국의 시간」제목 인용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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